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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국제골프] 글을 통한 선한 공격으로 올바른 골프문화 창달과 정착에 힘쓰겠습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칼은 육체는 상하게 할 수 있을지언정 마음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펜은 문장을 통해 사람들을 웃게도 울게도 하며, 감동을 주기도하고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한 문장 한 문장씩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써야 한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나온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어떻게 글로 써 내려가는가에 따라 그 파급효과가 달라진다.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의 김재화 이사장은 펜을 통한 선한공격으로 더 나은 골프문화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취미가 직업이 되는 것

김재화 이사장의 원래 직업은 방송작가였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계에서 알아주는 프로 작가였다. 그가 방송작가가 된 배경은 조금 남다르다. 당시 몸으로 웃기는 코미디프로와는 다르게 지적센스가 돋보이는 언어유희의 개그프로를 기획하던 PD가 대학생 작가를 모집했다. 각 대학에서 한명씩 추천을 받아 테스트를 하는 형식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PD의 눈에 들어 1974년도에 처음으로 방송작가가 되었다. 그는 JTBC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TBC 동양방송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개그프로를 전담했고, KBS2 채널에서 1983년부터 1992년까지 주말 저녁에 방송되었던 인기 프로그램 ‘유머일번지’의 메인작가로 오랜 기간 활동하였다.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그가 대중들의 뇌리에 인식이 된 배경에는 신문에 연재하던 칼럼이 있었다.
바로 스포츠조선에 1995년 10월부터 무려 14년간 총 3347회에 달하는 유머칼럼 '에로비안나이트'다. 14년 동안 꾸준히 연재했던 그는 단순히 성(性)만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정치 코미디라는 신념 아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많이 삽입해 더욱 인기를 끌었다. 이를 계기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총 40권의 책을 집필하며 글을 쓰는 것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시간과 공간에 제약이 없는 작가라는 직업 덕분에 언론학 석·박사 취득은 물론이고 골프에도 매진 할 수 있었다.

 
사고도 막지 못한 골프에 대한 열정

김 이사장과 골프의 인연은 1990년에 시작되었다. 당시 ‘메기’라는 별명을 가진 코미디언 이상운씨의 도움으로 처음 골프채를 잡은 그는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골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제가 운동에는 소질이 없는데 골프는 뭔가 다르더군요. 매일 방송국에 앉아서 일만 하다가 볼을 시원하게 때리니 스트레스까지 골프볼과 함께 멀리 날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또 체형과 관계없이 저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은 사람보다 볼을 더 멀리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처음 머리를 올리던 날, 나무 뒤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형이 오토바이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났는데, 활동적인 성격의 형이 골프를 못해보고 떠났다는 것이 굉장히 마음 아팠습니다. ‘형과 함께 라운드 했으면 더 좋았을 걸’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만약 외국에 나갈 일이 생긴다면 꼭 하루는 시간은 내어 골프장을 찾는다는 김 이사장은 1991년 둘째 아들 탄생의 순간에도 손에서 골프채를 놓지 않았다. ‘잘 빠지는’아이언이기 때문에 아이도 ‘잘 빠졌으면’이라는 생각에 분만실까지 가지고간 그의 남다른 골프 사랑은 유머까지 곁들여져 더욱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의 골프 인생에 항상 유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골프를 하면서 나와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너무 즐겁지만 저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사교의 목적으로 골프를 한 것은 아닙니다. 정말 골프가 좋아서 시작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지금도 저렴한 골프장을 찾아서 다니고 볼도 사은품 같은 것을 모아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약정신 때문에 위험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2008년 3월 12일, 추위가 조금씩 풀려갈 무렵 로스트 볼을 찾으려다가 절벽으로 떨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고로 허리가 부러졌는데 제가 의사선생님께 가장 먼저 한 말이 ‘골프하는데 지장은 없죠?’였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골프가 가장 먼저 생각이 난걸 보니 제 생각보다 훨씬 더 골프를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최소 5년 동안은 골프를 못할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침대에 누워 골프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골프에 대한 애정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도저히 골프를 잊지 못해 사고가 난지 1년쯤 뒤부터 집 근처의 골프연습장에서 구경을 하다가 아주 조금씩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제주도에서 라운드를 한번 했는데 잘 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골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생명을 다시 얻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만시간의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일만시간을 투지하면 그 부분에 대해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이다. 사고 이후 실력이 늘지 않았던 김 이사장은 당시 몸담고 있었던 코오롱 자문위원들 앞에서 선언했다. 6개월 뒤에 뭔가를 보여주겠노라고. 그 후 아침저녁으로 매일 골프연습장을 찾았고, 이틀에 한 번씩 라운드를 했다. 집에 돌아오면 퍼터를 놓지 않으며 퍼터에 ‘피를 통하게’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세운 목표에 도달 할 수 있었다. 힘들다고 포기하고,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으면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다들 안 된다고 했던 일에 과감히 도전하여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어낸 김 이사장의 정신을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할 것이다.

 

한국 골프문화 창달을 위한 건전한 비판과 생산적 제안 다짐

 김 이사장은 지난 1월 23일 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이하 골칼협)의 ‘신임집행부출범 및 자문위원위촉식’에서 정식으로 이사장직에 취임했다. 10년 전 인터넷에서 골프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 동호회 형식으로 시작했던 것이 지금 골칼협의 전신이다. 초창기 멤버로 시작한 그는 이사장으로서 포부가 당당하다.

 

 “제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일은 바로 역량강화입니다. 이를 위해 대한민국 1호 골프기자인 최영정님을 고문으로 모셔서 강의를 들으며 도움을 받으려 합니다. 우리는 골프를 좋아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전문 문사가 아니다보니 어법을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 스스로 역량강화교육을 실시하여 내실을 기함에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이와 동시에 숨어있는 걸출한 작가들을 찾아내어 골칼협을 골프문화예술 분야에서 최고의 위상과 규모를 갖춘 단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골프문화나 정책에 관련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공개 토론회’ 등을 상례화 할 것이며, 분기별 혹은 년 2회 정도라도 회보를 발간하여 골칼협의 활동사항을 널리 알리고 여러 미디어매체에 협회와 회원들이 기고할 기회를 갖도록 할 예정입니다.”

 

 김 이사장과 골칼협 회원들의 최종 목표는 ‘골프의 대중화’다. 이를 위해서 정부는 골프장과 골프 관련 업계에 여러 행정 편의를 주어야한다. 그리고 골프장은 경영혁신을 통해 그린피를 내려 골프장의 문턱을 낮출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경영혁신의 방법은 ‘클럽하우스를 없애자’는 것이다.

 

 “경영혁신의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지 그 합의의 과정이 쉽지 않을 뿐이지요. 클럽하우스를 없애게 되면 당장은 수십 명의 일자리가 없어져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골퍼들에게 그린피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에 내장객의 수는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클럽하우스 대신 스낵바나 프로샵만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굳이 클럽하우스를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골프장의 비싼 물가에 한 몫 하고 있는 클럽하우스는 잘못 들어온 문화입니다.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을 용기 있는 오너들이 하루 빨리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를 호령하는 골프 강국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골프는 외국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고 앞으로 열릴 올림픽에서 당당히 효자종목으로 등극할 건전스포츠지만 아직도 골프를 한다는 것이 죄악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골칼협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골프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골프문화 창달과 동시에 우리나라에 골프가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비판의 자유로 ‘선한 공격’을 함으로써 앞으로 골프계를 더욱 발전시켜나갈 골칼협의 회원들과 김재화 이사장의 문장을 눈여겨보자.

[월간파골프 2월호] 김재화 신임이사장 "골프가 있어 행복하다"
 
[월간시사골프] (사)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 김재화 회장 당선

지난 1월 24일 명동에 위치한 한국의 집에서 (사)한국골프칼럼니스트협회의 2013년 신년회가(이하 골칼협)개최되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지난 2012년을 빛낸 올해의 골프장상 시상과 함께 작년 12월 18일 당선된 김재화 회장의 취임식이 실시되었다. 신임 김재화 회장은 과거 1980년대 최고의 유머프로그램이었던 ‘유머일번지’의 방송작가로서 활동했고, 현재 한국유머스피치연구원 원장이자 말글미디어 대표다. 김재화 신임 회장은 취임사에서 “골프는 행복한 감정의 교감”이라 정의하고 임기동안 골프의 대중화와 인식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자연과 예술을 닮은 골프는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김재화 회장은 1980년대 KBS2 채널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 프로그램인 ‘유머일번지’ 방송작가로 활동했으며, 신문의 야한 칼럼(스포츠조선 ‘에로비안나이트’ 등)과 골프칼럼 등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23년의 구력을 자랑하는 그는 벌써 7권의 골프칼럼집을 선보였을 정도로 열렬한 골프 마니아였다. 방송작가 시절 친하게 지내던 연예인들과 어울리면서 골프를 접한 것이 처음이었다. 이후 골프라는 운동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혼자 연습장에서 10시간 이상 머무르며 볼을 쳤다고 한다. “골프를 처음 접한 순간 그리고 처음 머리를 올리러 필드에 나간 순간 모두 기억이 생생하다.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골프는 행복한 감정의 교감’이라고 말하는 그는 골프장은 감성충전소라는 특유의 지론을 펼친다. “굿샷도 좋고 나이스 샷도 좋습니다. 즐거운 감탄사가 있고 웃음이 있으니 행복합니다. 공이 잘 맞든 안 맞든 내기에서 이기든 지든 중요한 것은 ‘행복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골프장에서는 내 주장보다는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고 기분까지 맞춰줍니다. 동반자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니까요.”

골프 산업 못지않게 골프 문화의 선진화도 중요
신임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그는 ‘골프 산업의 선진화 못지 않게 골프 문화의 선진화’도 강조했다.
골칼협이 신문과 잡지, 인터넷 등에 지속적으로 올리는 골프칼럼과 단행본 발행 등의 움직임은 바로 골프 문화의 배양을 위함 이라는 설명이다. “골프는 우리 사회에서 다소 왜곡된 측면이 있다고 봐요. 대표적인 선입견이 사치성 스포츠이자 상류층의 전유물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인식을 깨고 골프의 정확한 위상을 알리며 진정한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세가지 근거를 들며 골프의 모순된 사회적 위치를 설명했다. 첫째로는 실질적인 골프 인구수다. 현재 국내 골프인구는 단순 계산만으로도 국민 15명중 한명이 골퍼다. 여기에 연간 2,000만명이상이 골프 라운드를 즐기고 있다.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많은 인원이 즐기고 있다. 둘째로는 세계무대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점이다. 수년전부터 일본 무대는 우리 선수들이 상금왕에 등극하고 있으며 미국 무대에서도 한국 선수들은 큰 활약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 아마추어 선수들은 아시안 게임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 2016년 올림픽에서도 치열한 메달 경쟁을 펼칠것으로 기대 되는 마당에 골프의 위상이나 역할을 무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직장인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하고 싶은 운동이 골프라는 점이다. 이는 골프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는 지났으며 상당수의 중산층 이하에까지 대중화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골프가 사치성 스포츠로 인식되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이제 골프는 상류층의 스포츠가 아닙니다. 돈과 시간이 많은 그들이 안팎의 비난을 감수하면서 골프를 고집할 시기도 지났으며 실리를 따지는 중상류층도 골프의 비용을 따지며 저울질을 시작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정말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골프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야 할 때죠.” 골프산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파이'가 커지는 미래산업입니다. 그래서 먼저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한국 골프산업의 발전은 고용창출과 지방 경기 활성화 등 엄청난 '경제효과'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골프산업 육성책을 수립하고, 지원에 앞장서야 합니다.”

진정한 대중 스포츠로의 골프를 기대한다.
김재화 회장은 골프 대중화에 대한 자신의 바람을 피력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골프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중산층 및 서민들이 즐기는 운동입니다. 또 어린이부터 시작해 60~70대까지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접근할 수 있게 골프장 출입 문턱을 낮춰야 합니다. 회원권이 10억 원이 넘는 골프장에서부터 그린피가 3만 원이 넘지 않는 대중적인 골프장까지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지요.” 그는 골칼협의 대표라는 간판 보다는 골프를 좋아하는 한 명의 순수한 골퍼로서 업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골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널리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골프 활성화를 통해 골프를 한국의 대표적인 브랜드 중 하나로 키우는 데 기여하고 골프가 우리 사회의 건전한 여가 스포츠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겨레 2008.12.15] 세상살이 팍팍해도 '한바탕 웃음으로'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웃음이 중요합니다. 미국 대공황 때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한국전쟁 중에는 한복남의 <빈대떡 신사> 같은 노래가 나와 국민들 시름을 달래줬지요.” 80년대 초 한국방송(KBS) 유머1번지 초대 작가로 방송계 주변에서 ‘유머 전도사’로 알려진 김재화(53·사진)씨는 “웃음은 사람들 시름을 덜어주며 정신적인 공황을 이겨낼 힘을 가져다준다”며 “지금같이 어려운 시기에는 특히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여유와 유머가 필요하다”고 했다.
 

2003년 중앙대에서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수용자들에게 미치는 행복감 증진 연구’로 언론학박사 학위를 받고 명지대대학원에서 ‘유머 웃음치료’ 강좌를 맡고 있는 그는 “웃음의 사회적 효능은 엄청나며 이미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고 했다. “사장이 종일 인상 쓰고 있는 회사는 직원들도 늘 표정이 어둡지요. 영업이 잘될 리가 없어요. 대표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회사가 잘 안 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는 “대통령이 부드러운 말씨와 유머 감각을 익혔으면 좋겠다”며 “대통령의 화술과 표정이 국민들한테 편안한 모습으로 전달되면 그만큼 나랏일도 잘 풀릴 것”이라고 했다. 김 박사는 “루스벨트 대통령, 처칠 총리 등 성공한 지도자들은 모두 유머감각이 뛰어났고, 그만큼 여유가 넘쳤다”며 “우리도 그런 대통령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우리 사회상이 90년대 말 구제금융시대와 비슷하다”며 “그럴수록 유머와 웃음의 힘을 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절 양희은의 <상록수>를 배경으로 박세리가 유에스 오픈에서 골프화를 벗고 쳐내는 장면이 국민들한테 얼마나 희망을 주었습니까? 한국인들이 긍정의 힘을 믿게 된 게 바로 당시 절체절명의 위기 때였거든요.” 그는 “사오정 시리즈가 나온 게 구제금융 직후였다”며 “서민들은 그같은 유머들을 통해 시름을 잊고 어려움을 이겨낼 지혜를 얻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 초 <유머의 타짜가 되자-웃음이 경쟁력이다>를 낸데 이어 최근엔 골프유머 칼럼집 <골프 없이는 못 살아>를 냈다. 그가 최근 송년 술자리 대신 직원들 특강을 여는 기업들을 찾아 ‘웃음 특강’을 하는 것도 전국민의 유머지수(HQ)를 높여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여유 있게 극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했다.

글·사진 이상기 선임기자 amigo@hani.co.kr

 
[스포츠조선 2008.1.22] "웃음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 김재화 유머코디네이터가 판매에서의 웃음의 활용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홍찬일 기자 scblog.chosun.com/hongil7>
 

"판매왕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얼마 전 인천에 있는 H기업 직원 승진 행사장. 초청강사인 유머 코디네이터 김재화씨가 주부 판매사원 100여명에게 '판매왕의 조건'에 대해 질문했다. "말솜씨가 좋아요", "대인관계가 굿이죠", "얼굴이 예뻐요" 등 몇 가지 대답이 나왔다. 한 사람이 "항상 웃는 얼굴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사가 호탕하게 웃으며 "맞아요. 바로 그것이에요"를 연발했다.

이들은 대부분 홍삼제조기와 홍삼을 취급하는 판매사원. 김재화씨는 판매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유머기법을 선보였다. 그의 입담에 모두가 까르르르. 한아름이나 되는 웃음보따리를 연신 풀어내야 했다. 

그가 처음 시도한 것은 아줌마 기죽이기. 그는 자신의 승용차를 BMW라고 소개했다. 여성들이 '돈이 좀 있구나'는 듯한 표정을 짓자 이내 Bus(버스), Metro(전철), Walking(걷기)의 약자임을 말해 폭소를 유도했다.

그는 판매 요소로 IQ(지능지수), NQ(인적지수) JQ(잔머리지수) 등을 생각할 수 있다'며 주의를 집중시킨 뒤 핵심을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HQ(유머지수)입니다."

유머의 방법으로 '뻥튀기'를 들었다. 상품의 효과를 실제보다 조금 좋게 말하면 과장이지만, 심하게 부풀리면 유머라는 것이다. 이런 뻥튀기 전략은 순간 웃음으로 이어져 판매자와 소비자와의 긴장감을 일시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

김재화씨는 판매 때 웃음과 함께 곁들일 것으로 인사와 칭찬을 들었다.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되면 단순한 상품이 고귀한 성품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상품이 아닌 성품이 될 때 판매자와 소비자와의 신뢰가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이날 행사를 주관한 홍가원의 박정애 사장은 "그동안 직원들에게 진실과 미소를 팔라고 교육한 결과 소비자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는 아침회의 때 유머 교육을 하고 있다.

유머기법은 공연, 연설, 강의 등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공연계에서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 연출자로 유명세를 탄 스타트리커뮤니케이션의 이민욱 대표가 과장법 인사로 웃음을 유발하는 명사에 속한다. 그는 고작 100여명이 들어갈 장소인데도 "1층에 3000명, 2층에 5000명"을 언급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친절의 상징인 백화점 도우미들이 예쁜 미소로 사람의 마음을 여는 데 비해, 활동적인 직업인들은 적극적인 유머 개발로 사람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기순스피치코치협회'를 운영하며 강사들을 양성하는 이기순씨는 "모든 강의에서 웃음은 필수다. 이제는 작은 웃음으로는 앞서갈 수 없다"며 "더 큰 웃음을 위해 커리큘럼에 스피치 기법외에 마술과 박수, 웃음 기법을 도입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웃음을 찾는 현상에 대해 학자들은 인간 소외의 반작용으로 보고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인간관계가 계약관계로 돼 마음을 터놓고 싶은 상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개별성 대신 집단성을 공유할 수 있는 웃음은 모든 분야에서 필요성이 더해진다는 주장이다.

류태호 고려대교수(교육학)는 "웃음은 최고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단언한 뒤 "기술의 발달과 웃음의 수요는 괘를 같이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상주 기자 scblog.chosun.com/letter3333>

[스포츠조선 2007.12.29] '에로비안나이트'작가 김재화씨 'TV코미디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2007-12-28      


'개그 콘서트'와 '웃찾사', '개그야'같은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본지에 유머 칼럼 '에로비안나이트'를 연재중인 작가 김재화씨는 최근 중앙대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TV코미디 선호도와 수용자의 생활만족도 및 정신건강 관계에 관한 연구'에서 이처럼 주장했다.
 

 김씨는 서울 지역 고교생과 대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토대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TV코미디를 보면서 웃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일수록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가 증대되고, 학습 능률도 오르며, 숙면을 취하는 등 전반적인 생활 만족감이 높아진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속설을 TV코미디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TV 코미디와 정신건강의 상관관계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예는 거의 없다. 김씨는 "누구나 느끼는 사실이지만 학문적으로 입증한 사례가 없어 흥미를 느꼈다"며 "코미디의 긍정적 기능을 밝혀내고자 연구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TV코미디가 선정성, 폭력성, 언어파괴 등 부정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제작자들이 콘텐츠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한층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지난 2004년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박사 과정에 입학해 4년만에 학위를 따게 됐다. "딱딱한 학문체 문장에 적응하는게 가장 힘들었다"며 활짝 웃은 그는 "앞으로 이 분야에 보완 연구가 나오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김형중 기자>

 
[스포츠조선 2005.3.21] '에로비안나이트' 최장기 연재 기록 기사 내용
 
2005-03-21      

  나는 방송 코미디 작가이다. '에로비안나이트', 이 신문 개그 칼럼을 만나기 전까지 무려 20수년을 방송 대본을 썼지만 개미새끼 한 마리도 이 거룩한 작가를 알아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신출내기라도 잠시 방송 프로에 얼굴을 내밀면 일약 사회적 명사가 되는게 그렇게 부러웠다. 그러던 것이 신문에 내 얼굴과 이름이 매일 나가니까 세상이 드디어 알아주더란 말이다. 그 파급 효과는 컸다.

석달연재 계획이 어느덧 10년 세월

"대문호도 못쓰는 글

쓰고 있다는 자부심"

< 스포츠조선에 최장기 연재를 기록하고 있는
에로비안나이트의 김재화 작가 >
 

  에로비안나이트 연재 6개월쯤이었을 것이다. 가구점서 물건을 사다가 가격시비가 일었다. 쥔 "가만...!"   나 "왜 노려보셔?"   쥔 "노려보는게 아니라.. 맞죠? 그쵸? 에로비안나이트?  우하하하!  그  작가  선생님이 우리집에  오시다니!  아깐  제가 잘못 했습니다. 반값에 드리겠습니다."   나 "아, 아니 이러시면 안되죠. 원래 돈을드릴게요."   쥔 "팬이 작은 보담을 하겠다는데, 받으셔야죠."   나 "난 괜찮은데 대신문 스포츠조선이 고료라도 적게 줘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무척 자존심 상해할겁니다. 제값 다 받으세요!"

  처음에는 석 달 정도 집필키로 한 것이 10년이나 됐다. 연재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났을 어느 날 초등학교 5학년이던 딸 아이가 학교서 울면서 돌아와 말했다. "아빠를 저질 작가라 놀려요. 신문에 나쁜 글 쓰지 마세요." 나는 외쳤다. "아니란다. 세계적 대문학가들도 감히 쓰지 못하는 훌륭한 글이란다. 아빠 글을 나쁘다고말하는 사람이 나쁜거야."

  1998년 대한민국 검찰이 날 불렀다. 서초동 "그대는 에로비안나이트라는 음란한부호로 혹세무민하고 있나니, 내 칼을 받아라!"   나 "나리! 전 이나라 미풍양속을끔찍이 지키는 그저 양순한 서생일 뿐이옵니다." 당시 지엄하신 검사님, 씨익 웃더니 내게 은밀히 말했다. "쉬잇! 에, 나도 재밌는 그 글 자주 봅니다만, 사회 일각서 고발이 있어서 말이지요. 나 참 이거..."  에로비안나이트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 나라에 대통령이 둘씩이나 더바뀌고, IMF라는 광풍이 몰아치고, 월드컴이 열리고, 대단한 지위에 있던 기업가가 자살하고, 9.11 테러가 일어나고, 동남아에 쓰나미가 덮치고, 예쁜 여배우가목숨을 거저 던져버리고... 아,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딸 다솜이가자라 초경(初經)을 하고, 대학생 숙녀가 된 지금까지 스포츠조선과 나의 금실은조금도 흔들림이 없으니, 우리의 인내심도 실로 대단타!

  에로비안나이트가 하고픈 이야기인즉 웃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라는 사회단체도 결성했다. 2003년 03월 출범한 그 운동이그것. 나도 내게 힘을 준 스포츠조선에게 애정을 보였다. 유력 정치인을 초청한자리서 말했다. "정치도 스포츠조선을 본받아야 합니다. 독자 우선이잖아요?당신들 말고 국민을 재밌게 해 주세요!"]

  10년은 결코 짧지 않다. 이 기간 나를 세워준 것은, 당신들 빈소 앞에서 웃기는이야기 구상을 허용해 주셨던 저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 에로-작가가 어둔 곳에서 글을 쓰면 안 된다며 작업실 전기료를 제때 못 냈어도 전기를 끊지 않은 한전강화지사 직원들, 살짝 오셔서 차(茶)를 놓고 가신 속초 펜션 최정인 사장, 돈을한사코 안 받으시는 김포 메기매운탕 집 정현자님, 힘내라고 귤, 옥돔, 고기를보내주시는 제주도 이애자 여사, 애사당(에로비안나이트 팬클럽) 회장 고수암양.등 전국에 계시는 모든 열혈독자님들의 힘이다.

 
[강상기의 '여기 이사람' (13)] 개그작가 '인간 김재화'

나는 그가 준 명함을 명함철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명함 왼쪽상단에 작은 글씨로 '인간'이라고 적혀 있고 명함중심에는 문패크기의 주황글씨로 '김재화'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작은 글씨로 10자리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명함을 뒤집어 뒷면을 보니 작은 글씨로 '웃는 나라 만들기 운동 본부장', '동아방송대  방송연예과 교수'라고 적혀 있다. 나는 명함에 적혀 있는 그의 전화를 눌렀다. "여보세요, 인간 김재화교수입니까?" 내가 묻자 "누구세요?"라고 되묻는다.
"강상기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더위에....."
"오늘 좀 만납시다."

김재화

집안에 있는 김재화교수의 사무실은 온통 개그소재 자료로 가득하다

토요일 오후3시, 목동 그의 집 한신빌라트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거실에 들어서자 에어컨을 작동시켜 놓아서 서늘했다. 거실에 앉아서 무용안무가인 그의 아내 정선아씨가 가져온 쥬스를 마시면서 집안을 둘러보니 개그 작가라서 인지 분위기가 썩 달랐다. 우선 넓은 거실창을 가린 광목커튼이 눈에 띄었다. 시인 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의 일부를 적어 놓았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지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중략....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격려하리라. " 광수체 비슷한 글씨인데 본인이 직접 쓴 것이라고 했다.

김재화

김재화교수가 직접 썼다는 광목천 커튼이 색다른 집안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쪽방문을 바라보니 '김우진연구소'라고 적혀 있다. 저 방은 누가 사무실로 쓰느냐고 했더니 웃으면서 중학교1학년에 다니는 아들 방이란다. 그래서 나는 거실에서 일어나 48평아파트의 네 개의 방문을 보게 되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인 딸 김 다솜 방문에는 '다솜이와 함께 춤을', 부부침실문에는 '정선아부부탐구실', 그리고 김 교수의 서재로 쓰는 방문에는 '글 익는 마을'이라고 적혀 있다. '글 익는'이라는 표현은 중의적이었다. 책도 읽고, 글도 잘 써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형TV가 있는 거실 맞은 편 벽에 수채화 물감으로 여류화가가 그렸다는 김 교수의 초상화가 있고, 그 아래에는 액자에 넣어진 표창장 세 개가 나란히 걸려 있다. 2000년12월19일 남편이 아내에게, 딸에게, 아들에게 내린  표창장이다. 좋은 마누라1위, 예쁜아이1위, 튼튼한 아이1위, 전부 1위를 하는 행복이 가득한 집이다.

김재화

김재화교수가 부인과 딸, 아들에게 수여한 '좋은 마누라 1위', '예쁜아이 1위', '튼튼한 아이 1위' 표창장 등 아기자기고 행복한 집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표창내용은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지만 아내한테는 부상으로 설거지100회, 업어주기100회, 키스100회라고 적혀 있었다. 이 표창장을 만들게 된 연유를 물었더니 전북 임실에 있는 예원 대학에 코미디언 서영춘 동상을 세우고 돌아온 날, 기분이 좋아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삥방아이넷 상장 인쇄하는 곳에 이런 내용을 인쇄하고 싶다고 했더니 너무 재미있다면서 무료로 인쇄해 특송해 주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웃는 나라 만들기 운동본부장답게 김 교수는 웃는 가정 만들기부터 실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개그작가 1세대로 한국최초 개그프로그램인 TBC-TV(전두환 군사정권 때 언론통폐합으로 없어짐) '살짜기 웃어예'를 필두로 '웃으면 복이 와요' '유머1번지'등 TV프로그램 및 라디오 프로그램 500여편을 집필했다. 감성 아포리즘집 '내 머리 속에 들어온 333인의 도둑'외 개그집, '유머캡슬' 등 30여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뿐만 아니라, 기업체, 단체, 방송유머 특강 등 700여 회를 기록 중이고 스포츠 조선에 일일 칼럼 '에로비안나이트'를 10년 가까이 연재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전업작가로  출발한 그는 동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하고 동아방송대학 교수를 하고 있지만  사회에 '웃음'을 전파하는 일을 인생 최대 가치로 여기며 산다.

" 70년대는 참 웃기기 어려웠어요. 산업화과정에서 사람들이 재물만을 좇아 여유가 없었고 국민 모두가 피곤해 있었어요. 더구나 유신체제였지요. 80년대는 군사독재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스포츠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방송연예인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했어요. 전두환 정권은 코미디를 없애라고 했어요. 이주일, 배삼룡, 이기동 등이 나오지 못하고 탤런트 박용식은 전두환과 머리가 닮아서 코미디가 된다고 출연 정지시켰어요. 나중에는 1사1코미디를 하되, 팔도강산 같은 프로를 하도록 했습니다. 90년대에는 도시 중산층이 세련되어가면서 코미디가 발전하기 시작했어요. 서구적 감각을 배우고 여유가 생기면서 표정이 밝고 잘 웃을 줄 아는 사람이 사회활동도 잘하고 성공한다는 웃음 성공학까지 나왔어요. 그러나 국민 전체로는 웃음이 약합니다. 서양사람들은 표정이 밝고 언제나 웃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고 웃으니까 행복하다는 말이 있죠. 95년 여의도에 코미디언, 개그작가를 양성하는  코미디 스쿨을 세워서 운영했는데 97년 IMF가 와서 문을 닫았어요. 그러나 나의 '웃음'만들기 작업은 멈출 수 없었어요. 그걸 가치로 알고 사니까요. 그래서 2003년 3월에 여의도 전경련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웃는 나라 만들기 운동본부'를 결성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사무실인 '글 익는 마을'에서 김재화 교수

김 교수가 이토록 웃는 나라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웃음'이 경쟁력인 시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웃음이야말로 개인의 삶에 윤기를 준다. 동시에 사회를 밝게 하고 불특정다수에게 희망을 주는 원동력이 된다. 국내의 불안정한 정치,  혹독하게 침체된 경제, 남북대치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진정한 웃음일 것이다. 온 나라가 웃음으로 넘치는 세상, 웃음이 세상을 바꾼다는 확신을 전 국민에게 전파하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김 교수는 불행이라는 바이러스를 퇴치할 행복 백신을 만드는 사람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행복 방정식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명함에 작게나마 그의 자부심 '인간'이란 말을 쓴 것은 아닐까? 

[2003.3.6]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 공식 출범 기사 내용
 
29일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 공식 출범
2003-03-06 11:52
'씩'화내지 말고'씨~익'하면…, 웃음천국

다음 웃는 모습은 누구일까요? <아래 사진에서 찾아보세요>


◇ 사진번호 위쪽 왼쪽부터 차례데로 1~7

"웃고 삽시다!"
정치, 문화, 연예계 인사들이 '웃고 살자'며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나섰다.
오는 29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전경련회관에서 발대식을 갖고 공식 출범하는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가 그 것.
개그작가 전영호와 유머강사 김영광을 비롯해 개그맨 전유성 이홍렬 심형래 김미화 이영자 이봉원 박미선 김종석 등 '웃기는데 선수급'인 사람들이 전문위원을 맡고 이시형 박사를 비롯해 주호성-장나라 부녀 탤런트 서인석 유지인 최주봉 코미디언 백남봉 배삼룡 등 100여명이 자문위원에 위촉됐다.


1. 명칭 : 웃는나라 만들기…
2. 누가 : 문화-연예계 등
3. 언제 : 3월29일
4. 어디서: 여의도 전경련회관
5. 무엇을: 이웃간 웃음 나누기
유머 콘테스트, 1일1소 웃음 우편 등
범국민 운동으로 확산
6. 후원 : 스포츠조선
스포츠조선은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의 활동을 후원하며 웃음을 전파하는데 독자와 함께 한다.
1970년대 초 '스마일 운동'이라는 정부시책이 있었지만 정치성을 내재돼 동기의 순수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는 웃음이야 말로 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하는 활력소라는데 공감한 각계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범국민적인 운동으로 확산될 계기가 마련됐다.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에서는 '이웃간 웃음 나누기 운동' 전개로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의 벽을 허물고, '바른 웃음 짓기 강연회' '유머 콘테스트' '웃음소리대회' 등을 통해 웃음을 확산시킨다는 복안이다. 또 정치인, 기업인, 종교인, 교육자 등 사회 지도층 인사 5만명을 선정해 '1일1소 웃음우편'을 발송하며 낙도와 산간벽지, 병영 등을 방문해 '웃음잔치'를 벌인다.
이밖에도 국민의 축제가 될 '웃음의 날' 제정, 사이버 유머학교 무료운영, 공공 현수막, 안내판 코믹하게 고쳐주기 등 비영리 사업을 통해 '웃음이 넘치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 앞장선다는 계획이다.
오는 29일 발대식에서 펼쳐질 '웃음소리 콘테스트'는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의 첫행사. 대구 지하철 참사를 감안, '웃음만이 희망이다'란 슬로건을 내걸어 희생자에 대한 위로의 뜻을 담았으며, 스포츠조선 외에도 SK, KT&G, 한국마사회, 정병원이 후원한다.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는 29일 행사에 인터넷(http://www.웃는%20나라.com/)과 전화접수(02-742-3138)를 통해 선착순으로 300명을 초청한다. < 이유현 기자 ylee@>
 
'에로'의 황제서 웃음 전도사로…
'웃는나라 만들기…'본부장 김재화씨
일명 '에로'로 통하는 김재화씨(51).
'유머의 아이디어 뱅크'인 그는 '웃는나라 만들기 운동본부'의 본부장으로 이번 행사를 기획, 추진하는 당사자다.
중앙대와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그는 94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6개월동안 '유머 웍스' 연구과정을 수료하게 된다.
"웃음을 하나의 산업으로 따져 건강효과를 내는 기술을 터득한 귀중한 시간이었어요."
그는 복도 앞 현관에 꿩의 깃털이 걸려 있었는데 '누군가의 겨드랑이를 간지럽게 하는 웃음의 도구'라는 문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문화충격이었어요. 사회에 웃음을 전파하는 일을 최고의 가치로 삼기로 결심했죠."
국내 최초의 개그 프로그램인 TBC TV '살짜기옵서예'를 시작으로 MBC TV '웃으면 복이와요'와 KBS '유머 1번지' 등 그동안 TV와 라디오 코미디 프로그램만 500여편을 집필했다.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감성아포리즘집 '내 머리 속에 들어온 333인의 도둑'과 개그집 '유머캡슐' 등 30여권의 관련 저서를 펴냈다. 또 기업체나 단체의 유머 특강만 700회 이상을 기록했다.
본지에 8년째 '에로비안 나이트'를 인기리에 연재하며 한국소맹퇴치운동본부장을 역임한 그는 현재 방송작가와 개그 컬럼니스트, 동아방송대 방송연예학과 교수로 활약중이다. < 황수철 기자 midas@>
 
◇ 이영자 ◇ 서인석 ◇ 심형래 ◇ 장나라

◇ 김미화 ◇ 백남봉 ◇ 박미선 ◇ 전유성

◇ 이홍렬 (전문위원) ◇ 김재화(본부장)
◇ 사진번호 위쪽 왼쪽부터 차례데로 1~10
[2002.4.24] 특집기사내용에 2000회를 맞아 전면 인터뷰 기사 내용
본지 연재 '에로비안 나이트' 24일 2000회 김재화씨 2002-04-23 11:59

"난 색깔있는 웃음 전도사"
부모님 돌아가셨을땐 울면서 집필, 생생한 글 위해 '텍사스촌' 취재하기도 '음란혐의' 조사하던 검사 "나도 애독자"



"이 나라에 웃음의 전도사인 나 김재화가 없었다면,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 흉악해져서 살인, 방화, 약탈, 강간 등 수많은 범죄가 지금 보다 100배는 늘었을 테니, 나의 공이 지대하다고 아니할 수 없도다."  대한민국 범죄율을 '2%' 낮춘 작가 김재화씨의 인기 칼럼 '에로비안나이트'가 4월 24일로 연재 2000회째를 맞았다. 95년 10월 주 1~2회 연재의 조건으로 시작됐으나 독자들의 폭발적 호응에 힘입어 2개월쯤 후 매일 연재로 바뀐 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쉬지 않고 독자를 만나왔다.  섹스의 줄기에 유머의 가지를 친 '에로비안나이트'. 그의 칼럼은 '야하면서도 유치하지 않고 품격이 있는 섹스 유머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매일 아침 제 글 읽는 맛에 산다는 칭찬을 들을 때 가장 뿌듯합니다. 산 넘고 물 건너 2000회까지 오니 참 감개무량하네요."  6년반의 세월. 기억에 남는 칼럼은 일일이 헤아리기 어렵지만 개중 오현경, 백지영씨에 대해 썼던 칼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단다.  두 사람 모두 오가며 인사를 받은 적이 있던 터라 비디오 사건이 터져 대한민국 성인 남자라면 누구나 본 그 유명한 비디오를 그는 보지 않았다고. 그리고 칼럼을 통해 한국 성인 남자들의 관음증을 꼬집어 많은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물론 비난한 사람도 있었지만.  전 종암경찰서 김강자 서장이 미아리 텍사스촌을 뒤질 때 쓴 칼럼도 잊을 수 없다고. "보다 생생한 글을 위해 맨 정신으로 텍사스촌을 취재갔었는데 푸줏간 같은 정경을 보면서 참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그의 '에로비안나이트'는 이처럼 웃고 즐기는 과정에 한 줄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것이 매력.



덕분에 애독자층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두텁다. 김씨의 개인 홈페이지 격인 에로비안나이트(www.humornara.net)는 1년여전에 개설됐는데 지금까지 총 접속자수가 100만명을 육박하며, 에사모(에로비안나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생겨나 수십여명이 활동중이다.  잊을 수 없는 애독자도 많다. 제주도의 한 여자 애독자는 아무 조건없이 매년 봄 여름에는 생선을, 가을 겨울에는 귤을 수십상자씩 보내 아파트 주민들이 다 함께 나눠먹고 있다고. '얼굴이 명함' 수준이 되다보니 얼굴 알아본 주인 덕에 물건 싸게 사는 식의 에피소드는 부지기수라고 한다. 유머 강연 요청도 쇄도, 지금까지 400여회 이상 각종 기업체나 관광소 등에 출장을 나갔는데 지난해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부부 등 전경련 핵심 멤버들의 사교 모임에 초청돼 가기도 했다고.  

하지만 섹스유머라는 다소 위험한 소재를 다루다보니 위기도 없지는 않았다.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등을 필두로 스포츠지 만화 등의 음란물 혐의로 온나라가 뒤숭숭할 때 김씨의 '에로비안나이트'도 혐의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 기소유예로 풀려났지만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가닥 위안이었던 건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조사를 다 마치고 귓속말로 그러더라구요. '사실은 나도 그 칼럼 애독자입니다'라고. 어찌됐건 범죄률 줄이는 칼럼으로 자부해왔는데 되레 범죄자로 몰리니 기가 막히더군요. 옛날 얘기죠."  매일 연재를 하다보니 펑크를 내지 않기 위해 겪었던 고통의 시간도 있었다고 회고. "연재하면서 부모님이 두 분 다 돌아가셨는데 어쩝니까. 상가집에 있으면서도 글을 써 보냈지요. 독자들은 웃으셨겠지만 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쓴 글이었답니다. "  매일 웃음의 소재를 찾아야하는 일. 방대한 자료수집이 뒷받침되지 않을 수 없다. 7개의 일간지, 2개의 주간지, 4개의 월간지를 정기구독하고, 인터넷을 서핑하고, 젊은이들을 만나며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자 애썼다. 관련 책도 수시로 사 모아 방 두 칸 전체가 2000여권의 유머 책으로 채워져 있을 정도란다.  

그러나 칼럼 인기의 비결은 뭐니해도 김씨 전매특허의 어법. '유머일번지' 등 15년간 내로라하는 KBS 간판 코미디프로를 도맡았던 대한민국 개그작가 1세대답게 무슨 얘기건 그를 거치면 배꼽잡는 유머로 버전이 바뀌었다. 아내인 정선아씨와의 정사 이야기 등 안방 풍경을 솔직히 끄집어내 보여주는 것도 인기 비결 중 하나.  연재 기간 한국소맹퇴치운동을 벌였던 일도 큰 보람으로 기억된다는 자칭 유머코디네이터 김재화씨. 끝으로 애독자 여러분들에게 당부할 말씀이 한가지 있단다. "5초 웃으면 이틀간 더 산다고 하데예, 살짜기 웃어예~."
< 정경희 기자 gumn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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